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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생에게 도움을 주는 형이 되고 싶습니다”
발생지역 함경남도 신포 보도날짜 2008.11.11 조회수 5229


“동생에게 도움을 주는 형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함경남도 신포시에 사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입니다. 집안 형편상 학교는 지금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7월 말에 우리 집 식량 사정이 너무 힘들어 강원도 세포군에 살고 있는 고모네 집에 아버지와 함께 식량을 구하러 갔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잘 다니지 않던 아버지인데 너무나도 먹고 살기가 바빠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 고모가 맨발 바람으로 달려 나와서 아버지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떻게 오빠가 동생 집을 찾아왔는가?” 하면서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고모가 시집간 후 처음 만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렇게 사이가 좋던 고모네 부부가 서로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더 있자니 눈치가 보여 20여 년 만에 고모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고모부가 세포군에서 한 자리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배낭을 크게 만들어서 세 개나 가져갔는데 배낭에는 먹을 것은 못 넣고, 돈 3만원과 고모네가 입던 옷들만 채워왔습니다. 세포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 돈을 쓰지 않으려고 아버지와 함께 9일 동안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왔습니다. 그런데도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돈이 다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삼촌이 우리 집에 들렀습니다. 삼촌도 먹을 것을 좀 구할까 싶어 세포에 사는 고모네 집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삼촌은 고모에게 줄 선물로 마른 낙지(오징어)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달랑 돈 1만원을 쥐어 주더라면서, 선물로 가져간 물고기 값 본전도 안 된다고 푸념했습니다. 삼촌은 “그렇게 시집 잘 갔다던 누이네 생활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더라”며 별 도움을 받지 못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했습니다. 아버지는 큰 형이면서 삼촌에게 아무 도움도 못 주는 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삼촌은 그런 말 하지 말고, 형님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하면서 밤새 얼마 안 되는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습니다. 저도 아직 9살 밖에 안 된 제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동생이 힘들 때마다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을 만큼 돈을 잘 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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